2016년11월26일(토요일) 전주 한옥마을
전주는 두말이 필요 없는 고도(古都)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후대에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본향인 전주가 왕조의 뿌리가 됐다. 조선 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곳으로, 호남과 제주 일대의 중심이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판소리’의 고장이자,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다.
이를 뽐내기라도 하듯 전주는 고속도로 입구 현판부터 다르다. 서예가 여태명이 쓴 민체다. 한글을 사용하던 백성의 글씨를 닮은 서체다. 그러고 보니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화약이 맺어진 땅이다. 그 자체로 자연과 전통, 철학의 공동체라는 슬로시티의 취지에 부합한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한옥을 아우르는 전주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전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에는 전주의 꼿꼿한 정신이 담겼다. 시간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전군가도가 개설됨에 따라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다. 그러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확장했다. 이에 반발한 전주 사람들이 풍남동과 교동에 조성한 한옥촌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 오늘날 한옥 600여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 오목대에 올라 전경을 보면 실로 장관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한옥마을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어진박물관
조선태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는 경기전 정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 한옥마을 소재의 전통 박물관이다. 경기전 경내에 있다.
2010년 11월 6일에 개관한 어진박물관은 전주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 경기전과 태조어진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격조 높은 전시를 통해 찬란한 조선왕실 문화유산의 보존ㆍ관리 및 선양의 중심지이다. 어진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 건축 연면적 1,193.71㎡의 규모이며, 지상 1층은 태조어진과 새로 모사한 6분의 어진(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이 전시되는 공간이다. 또한 전시공간인 역사실과 가마실,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휴게공간과 박물관 업무 및 관리를 위한 사무실, 유물의 보관을 위한 시설인 수장고로 조성되어 있다. 가마실은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하던 향정, 신연, 채여, 가교 등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가마를 전시하게 되고 역사실은 경기전, 조경묘와 관련된 유물 그리고 건축·제례 관련 고문서 제기 등 8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전주 전동성당은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恨 맺힌 사형터
사적 제288호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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