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밀양시티투어

흰구름 꽃구름 2019. 4. 14. 21:12



2019-04-13 토요일


요즘 안 가 봤던

남쪽 (경상도) 여행이 즐겁습니다.

이번엔 밀양시에요.

매주 토요일

오전10시 밀양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로 결정.

밀양시청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고

요금 1인 3,000원 2인 6,000원

미리 입금했습니다.


밀양하면

얼음골, 밀양아리랑

정도 알고 있었는데

남천강을 내려다보이고

우리나라 3대 누각중 하나

밀양의 보물 영남루가 있었네요


전래동화, 전설의고향 등에서

 본 듯한 아랑각의 슬픈 이야기.

의열기념관, 해천항일테마거리.

밀양아리랑시장과  

연두연두빛 봄이 무르익어 경치좋은 위양지

아리랑 아트센터에서의  아리랑공연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표충사와 얼음골이

숙제로 남았습니다.





흥과 정이 넘쳐나는 밀양시티투어’ 

4월 13일부터 11월 9일까지 운영











영남루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


밀양 남천강 옆 아동산에 위치한 영남루는 보물 제 147호로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동서 5간, 남북 4간의 팔작지붕에다 좌우로 2개의 딸린 누각을 거느린 이 거대한 2층 누각은 신라의 5대 명사 중의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건물인 소루였으나, 영남사가 폐사되고 난 이후 고려 공민왕 때 그전부터 있던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하여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84년에 밀양부사 이인재가 다시 세운 것이다.


























아랑각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처녀를 기리는 사당,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으로 밀양 남천강 옆의 영남루 바로 아래 대나무숲 속에 있다. 이 비각은 죽음으로써 처녀의 정절을 지킨 아랑을 기리는 것으로 조선 명종 때 세워진 것이라 한다. 1965년 종래의 건물이 낡아 지역민들과 출향 인사들의 성금과 당국의 보조로 현재의 아랑각을 중건하였다. 사당은 맞배지붕의 3칸 건물이며, 삼문으로 이루어진 정문(正門)은 정순문(貞純門)이라 편액하였다. 사당 안에는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아랑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아랑 *

아랑은 조선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尹東玉)을 가리키며 재기있고, 자색이 뛰어난 규수로 전해진다. 18세 때 유모의 꾀임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을 갔다가 통인(通人) 주기(朱旗)에게 정조를 강요당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이후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절을 기리기 위해 영남루 아래 아랑의 시신이 묻혔던 곳에 열녀사(烈女祠)라는 사당을 지었다. 이후 매년 음력 4월 16일이면 소복한 처녀들이 제관이 되어 제등을 밝히고 그의 정숙한 넋을 기리는 아랑제가 열리고 있다.















김원봉 출생 1898, 경남 밀양, 사망 미상, 국적 한국(대한민국 임시정부 - 북한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 및 군사부장을 맡았다. 1919년 의열단을 조직했으며, 중국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대 후반 조선민족혁명당을 이끌고 중국내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다. 19462월 조선공산당이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했을 때 5명의 의장 가운데 1인이었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에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195810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된 후 숙청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윤세주 출생 1901, 경남 밀양, 사망 1942, 국적 한국 

 

19193·1운동 때 밀양 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동했으며 의열단에서 활동했다. 1942년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전투 중 사망했다. 의열단원으로 국내에 들어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중 한 곳의 파괴를 목표로 거사를 준비하다가 19206월에 체포되어 7년형을 받았다. 1927년 출옥 후 12월 신간회 밀양지회가 조직되자 총무간사로 선임되었다. 신간회가 해체된 뒤 중국 난징으로 건너가서, 193210월 조선혁명간부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했다. 1934년 조선대일전선통일연맹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5년 조선대일전선통일연맹에 소속된 5개 단체가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하자, 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한글판 기관지 <민족혁명>의 편집책임자로 일했다. 19426월 요현 마전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198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박재혁 출생 1895(고종 32), 부산 사망 1921. 5. 27, 대구 국적 한국 

 

독립운동가. 부산진보통학교와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1917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이때 중국에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특히 김원봉과 친분을 가지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208월 상하이에서 김원봉이 주도한 비타협적·폭력투쟁 노선의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다. 당시 의열단은 암살 대상으로 조선총독 및 고관, 군 장성, 친일파 거두 등 소위 7가살(七可殺)을 정하고, 파괴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등을 정해 철저한 응징을 가할 것을 결의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13일 부산경찰서 파괴의 임무를 띠고 짐 속에 폭탄을 숨겨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다.

 14일 부산경찰서를 방문해 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에게 고서를 보여준다고 속인 다음 짐 속의 폭탄을 꺼내 던졌으나,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서로 부상만 당한 채 일경에 붙잡혔다. 1921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고문과 폭탄 파편에 의한 상처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단식을 감행해 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영화 <암살>의 유명한 대사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주말드라마 <이몽>

201954일부터 방영 예정인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드라마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








밀양관아지

조선시대 밀양부 관아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본래 있던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전부 불타버렸는데 1612년에 원유남 부사가 부임하여 원래 자리에 관아를 재건하였다.
고종32년(1895년)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군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27년도에 삼문동으로 밀양군청을 신축하여 이전한 이후 밀양읍사무소, 밀양시청, 내일동사무소의 청사로 이용되었으며, 2010년 4월 현재의 관아로 복원되었다






위양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 위양못 양양지 소개 신라시대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로 백성들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양지라고도 한다. 저수지 가운데에 5개의 작은 섬과 완재정 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팝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을 심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선비와 문인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이다. 



























밀양아리랑공연 날좀보소

멋진 공연 잘 봤습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밀양아리랑은

흐믓한 미소 절로 나왔고 큰 박수 보냈습니다.




밀양시청앞에서 인증사진 ^^




멋진 야경 보려고 다시 찾은 영남루